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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에서 존재했던 왕조입니다.
이 왕조 시기에 양반 관료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정치를 수행하였으며,
농업 중심의 자연 경제 체제가 강력하게 유지되었고 양반을 중심으로 한 세습적인 계급 사회였습니다.
유교 문화의 위신이 강해짐에 따라 일반 백성과 여성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성격을 강하게 유지하였습니다.
조선의 왕 순서 조선왕조계보입니다.
조선왕 순서 조선왕조계보
▶ 태정태세 문단세 (1대~7대)
이 시기는 고려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태조를 시작으로
고려왕조 시절의 혼란이 안정화되고 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졌으며
조선의 태동을 시작으로 기틀을 잡은 시기입니다.
1대 태조(1392-1398)
이성계, 조선의 제1대 왕. 고려 말 우군 도통사로 요동 정벌을 위해 북진했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과 손잡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1392년 공양왕을 양위시키고 스스로 조선왕조의 태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도성을 쌓고 도로와 관청, 시장, 학교 등을 건설하여
새 왕조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2대 정종(1398-1400)
1대 태조의 둘째 아들.
3대 태종(1400-1418)
제1대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병을 없애고 관직 제도를 개혁하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제3대 왕 태종은
사병제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 강화에 힘썼습니다.
의금부를 설치하여 법사제도를 정비하고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습니다.
또한 억불숭유정책을 강화하여 전국 사찰을 정리하고 호패법을 통해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며
북쪽 여진족을 물리치고 국경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4대 세종(1418-1450)
3대 태종의 셋째 아들.
훈민정음 창제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음악 등 전 분야를 발전시켜 조선의 황금시대를 연 성군입니다.
나라의 기반을 안팎으로 다진 태종의 노력으로 세종은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유교 정치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정책연구기관인 집현전을 설치하여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와 달력을 제작하며 아악을 정리하는 등
조선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황희, 맹사성과 같은 훌륭한 재상을 등,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어
백성을 위한 민본정치가 꽃 피웠습니다.
국방에서도 김종서의 4군 6진 개척으로 국토가 확장되는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공을 세웠습니다.
5대 문종(1450-1452)
4대 세종의 맏아들. 성품이 온화하고 학문을 좋아한 왕
6대 단종(1452-1455)
5대 문종의 아들. 정치적 야심에 희생된 소년 국왕.
7대 세조(1455-1468)
4대 세종의 둘째 아들(수양대군).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 이후 20년간 세자로 세종을 보좌하던 문종이 일찍 죽고,
이후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7대 왕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장악했습니다.
세조는 의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폐지하고 재상의 권한을 축소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과전법을 폐지하며
직전법을 시행하고 중앙군 제도를 개편하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예성연중 인명선(8대~14대)
조선의 정치체계가 본격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시기.
8대 예종(1468-1469)
7대 세조의 둘째 아들.
9대 성종(1469-1494)
1469년에 예종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리자, 정희대비가 대신들과 의논해 즉위시켰다.
7대 세조 손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한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대 왕 성종은 세종과 세조의 치적을 기반으로 문물제도 정비를 완비하고
경국대전을 편찬하여 통치의 기본 이념과 방향을 법제화하였습니다.
또한 세종 때 집현전인 홍문관을 설치하고 사림파를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였습니다.
10대 연산군(1494-1506)
9대 성종의 장남이자 폐비 윤 씨의 아들.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폐위 이후 즉위한 10대 왕 연산군은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켜 폭정을 일삼고 폐왕이 되었다.
11대 중종(1506-1544)
제9대 성종의 둘째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
12대 인종(1544-1545)
11대 중종의 맏아들. 성품이 온화하고 효심이 깊었던 왕.
13대 명종(1545-1567)
11대 중종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
14대 선조(1567-1608)
11대 중종의 손자. 당쟁과 왜군의 침입에 휘말린 왕.
당파싸움의 혼란을 겪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발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선조가 의주까지 피신하는 등 수세에 몰렸으나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의 뛰어난 활약으로 일본을 물리쳤습니다.
▶ 광인효현 숙경영(15대~21대)
선조 때 임진왜란 인조 때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엄청난 혼란을 겪었던 시기.
15대 광해군(1608-1623)
14대 선조의 둘째 아들.
조선 중기 격동기에 실리외교를 택한 군주로 대동법을 시행하였습니다.
조선은 15대 광해군에 이르러 전후 복구 사업에 임했습니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 중립외교를 펼쳤지만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었습니다.
16대 인조 (1623-1649)
14대 선조의 손자.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 왕입니다.
16대 임금 인조는 병자호란 때문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청나라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송시열 송준길 등 대학생들이 잇따라 배출됐지만 당파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붕당 간 세력 균형이 깨지면서 왕권도 불안해졌습니다.
17대 효종(1649-1659)
16대 인조의 둘째 아들.
18대 현종(1659-1674)
17대 효종의 아들.
19대 숙종(1674-1720)
18대 현종의 아들.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했습니다.
당쟁과 궁중암투가 극에 달하면서 관련 인물로는 인현왕후, 희빈장 씨, 숙빈최 씨가 있습니다.
19대 왕 숙종은 국왕이 정치무대의 중심에 서서 붕당 간 세력균형을 조절하기 위한 탕평책을 펴는 한편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혼란스러운 민심을 수습하였습니다.
20대 경종(1720-1724)
19대 숙종과 희빈 장 씨의 아들.
21대 영조(1724-1776)
19대 숙종과 숙빈 최 씨의 아들.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였습니다.
탕평책을 시행하여 붕당의 폐해를 완화하는 한편 민생안정과 산업진흥을 위한 개혁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영조는 속대전 등을 편찬하여 법치체제를 재정비하고 농업정책과 수취제도 개선에 힘썼습니다.
균역법을 시행, 청계천을 준설, 사치풍조를 금지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는 등
재위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 정순헌 철고순(22대~27대)
쇄도 정치로 인해 혼란스러워지고 구한말에는 서구 대열에 합류하면서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
22대 정조(1776-1800)
21대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탕평책을 계승하여 인재를 균등하게 등용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됩니다.
규장각을 통해 왕권을 지탱할 인재를 육성, 숙종과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정조는 100회 이상의 궁궐 밖 행차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직접 관찰하고
억울한 일을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중, 하급 관리 중에서도 유능한 인물을 직접 선발하여 국정 운영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정조 사후 60여 년에 걸쳐 왕의 외척세력이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정치가 전개되면서
각종 비리와 탈세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세도정치에 저항하는 민중세력이 급격히 증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세력의 문호개방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흥선대원군은 실추된 왕권을 회복, 민생을 안정시키는 한편
외국과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확고히 했습니다.
23대 순조(1800-1834)
22대 정조의 둘째 아들. 1811년 홍경래의 난 발생했습니다.
24대 헌종(1834-1849)
23대 순조의 손자.
25대 철종(1849-1863)
22대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 1844년 강화도에 유배, 19세 나이로 즉위.
26대 고종(1863-1907)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입니다.
26대 고종은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친정으로 돌아오면서 개항을 통해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고종은 일련의 개화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정척사파의 반대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을 겪으면서
조선의 국운은 급격히 쇠퇴해 갔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에 체결되어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후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27대 순종(1907-1910)
26대 고종의 둘째 아들.
조선의 27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1907년 즉위한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재위 3년 만에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을 맞아 519년간 이어져 온 조선왕조의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왕의 묘호 차이점
왕의 묘효에 붙는 '조 와 종'의 차이점.
'조'는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에 붙였으며
'종'은 나라를 잘 다스린 덕이 있는 왕이나 조선 왕조의 조상으로서 왕위를 지킨 왕에 붙입니다.
조와 종이 없는 연산군과 광해군도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에 대한 업적이나 성과가 없어 왕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군'으로로 강등된 사례입니다.
여기까지
조선왕 순서, 조선왕조계보, 가계도를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