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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
흥선대원군 이하응

 

 

 

 

흥선대원군은 누구인가

 

> 조선말기 개혁정치와 통산 수교 거부 정책을 펼친 정치가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아버지이며 정치인이다. 이름은 이하응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서원 철폐와 호포법 시행 등의 개혁을 이끌었으며

외국과의 교역을 하지 않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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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활동을 하였나

 

흥선군 이하응은 1820년 남연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실과는 거리가 먼 왕족이었으나 25대 왕인 철종이 자녀 없이 죽자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의 자리에 앉혀 대원군이 되었다.

대원군이란 왕의 친아버지를 높이 부르던 말인데 흥선대원군은 조선시대 유일의 살아있는 대원군이었다.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먼저 세도정치를 일삼으며 나라를 어지럽힌 안동 김 씨 세력을 몰아냈다.

그리고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하여 부패한 관직들을 몰아냈다.

당쟁과 부패의 원인이 된 서원을 47곳만 남기고 모두 없애고 새로운 법전 육전조례를 발행했다.

삼정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세금 제도도 개편하였는데 특히 군포를 폐지하고 호포법을 실시하여

양반들도 세금을 내도록 하였다.

백성을 괴롭히던 온갖 잡세를 없애고 국가 재산을 몰래 빼돌리는 관리들은 엄하게 다스렸다.

이러한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은 백성의 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새로 짓고

세금을 늘리고 당백전을 발행해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세력이 조선 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함과 동시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무력 침입도 단호히 물리쳤다.

서울 종로사거리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배척하고

근대적 조약을 체결하자는 일본의 요구도 거절했다.

이처럼 통상 국교정상화 거부정책을 펼치던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면서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에 밀려 권력을 잃고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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