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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조선시대 최고의 어사라고 불리는 박문수가 떠오릅니다.
실제로 박문수는 뛰어난 수사능력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영조 때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박문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는 누구인가?
조선시대 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박문수(1691~1756)입니다.
조선 영조 때 문신이자 학자이며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성보, 호는 기은 또는 명촌이에요.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727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부정관리들을 적발하였으며
이후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 탁지정례라는 책을 편찬하였는데, 당시 부패한 관청의 재정과 세금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과의 무역 문제에서도 활약하였고, 왕에게 백성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시호는 충헌입니다.
박문수 하면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거지꼴로 변장해서 탐관오리를 혼내준 건데 진짜인가요?
어사 박문수 거지로 변장하여 탐관오리를 혼내주다.
네 맞습니다.
실제로 박문수는 지방 수령 및 아전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거지처럼 하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하루는 한 마을 앞을 지나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주민들이 저 사람은 분명 거지다라고 하며 비웃자 화가 난 박문수는 직접 옷을 벗어주고
밥을 지어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놀랍게도 그 거지는 다름 아닌 박문수였다고 합니다.
탐관오리의 뜻
탐욕이 많고 부정을 일삼는 벼슬아치를 뜻하며, 한자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면 '貪'은 탐낼, '官'은 벼슬, '汚'은 더러울,
그리고 '吏'는 벼슬아치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탐관오리'는 부정과 탐욕에 물든 관료를 형상화한 성어입니다.
박문수 암행어사가 된 계기가 있나요?
박문수는 1691년 문과에 급제해서 병조정랑, 경기도관찰사, 호조참판등 여러 벼슬을 거쳤습니다.
특히 1723년 영남절도사로 부임했을 때 큰 흉년이 들어 아사자가 속출하자 구휼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정책이 크게 인정받아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됩니다.
이후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이때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서얼 출신이라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조 임금께서 인재 등용 정책을 펴면서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정약용, 김정희 같은 뛰어난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결국 암행어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무엇인가요?
사실 박문수는 청렴결백한 선비로도 유명하지만 대표적인 일화로는 역시 거지 행세죠.
원래 성격이 너그럽고 온화한 데다 다른 사람에게도 늘 친절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모두 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남몰래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조선시대 최고의 암행어사였던 박문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지만 역사 속 위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는 점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