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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떠한 왕이었나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9대 왕이다. 제위기간은 391년에서 412년이다.
제위기간에 수많은 정복 전쟁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고 한반도 만주 일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은 왕이다.
추가로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연호를 사용하였고 동예를 통합하였고 동부여를 정벌하였다.
▶간단하게 요약정리한 내용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은 즉위 초부터 적극적으로 백제를 공략하여 한강 너머까지 진격하였다.
백제가 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대방고지와 배후신라를 공격하자 병력을 보내 왜구를 전멸시켰다.
신라에 대해서는 친선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여 신라에 복속 담보물로 인질을 보내도록 하였고
후연이 공격하자 반격하여 요동성 일대를 장악하고 거란, 식신, 숙신을 정벌하는 등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장하고 내부 정비에도 노력하였다.
평양에 9개 절을 창건하여 불교를 장려하였다.
▶생애 업적과 이야기 1
이름은 담덕이며 고국 양왕의 아들이다.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로서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다.
줄여서 광개토태왕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광개토태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재위 시 칭호는 영락대왕이었으나 영락은 우리나라에서 최초 사용된 연호로 알려져 있다.
386년 태자로 책봉되었고 391년 고국양왕 사후에 즉위했다.
즉위 초 대방을 탈환하고자 백제 북쪽을 공격하여 석현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에는 스스로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와 대신 10명을 인질로 두고 개선하였다.
그래서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 원군을 보내 왜구를 물리치고 신라와는 하슬라를 경계로 하였다.
연나라 모용희를 반격하여
신성 남소의 2성 등 700여 리의 땅을 탈취 405~406년 후연의 모용희의 침입을 두 차례 받았으나
요동성과 목저성에서 모두 물리쳤다.
407년 모용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과는 국교를 맺었다.
410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하고 64성을 공파함으로써 동부여가 고구려 판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남하하여 한강선까지 진출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능은 소재 미상이지만
414년 장수왕이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구에 건립한 광개토대왕릉비에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살아온 역사 이야기풀이 2
광개토대왕은 18세의 나이에 고구려 왕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고구려를 어느 나라보다 크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 못지않았다.
광개토대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중국 연호를 버리고 영락이라는 한국 고유의 연호를 처음 사용했다.
독립국으로서 나라의 기초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광개토대왕은 우선 나라 경제가 발전해야 국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농가를 찾아다니며 농부들을 격려하는 한편 농사 방법을 개량하여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우리 민족이 단군의 후손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임을 깨닫게 하였고
절을 지어 불교를 장려하기도 하였다.
광개토대왕은 백성들이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살 곳이 마땅치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므로
국토가 안전해야 백성도 편하게 살 수 있고 그래야 나라가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왕이 이룬 국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몇 년 되지 않아 광개토대왕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백제의 성을 무너뜨리고
신라를 도와 왜구를 물리치고 북쪽으로는 거란을 물리쳤다.
광개토대왕은 능란한 지휘와 현명한 작전으로 백전백승을 거두며 사방으로 세력을 넓혔다.
지금의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도 일부가 고구려 땅이 되었고
동해안과 시베리아 지방 북쪽으로는 북만주 그리고 서쪽으로는 요동반도까지 고구려 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름지고 넓은 고구려 땅을 노리는 나라가 많았다.
그걸 잘 알고 있던 광개토대왕은 군사훈련으로 수렵대회를 자주 열었다.
병사들이 짐승을 쫓아 말을 타고 산을 달리고 화살과 창을 쓰다 보면 무술이 저절로 익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를 다스리면서 넓은 땅에서 많은 백성들이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하였으나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광개토대왕은 우리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영웅이고
그의 아들 장수왕이 광개토왕릉비를 세워 아버지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도 하였다.